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건장한 체격과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다.
단 한가지 자신이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래 서있거나 오래 걷기,뛰기 등을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나의 신체적 결점때문에 방위 자격증을 얻었지만.
나의 방위입대 소식에 의문를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차인표씨,구본승씨 등 이미 많은 인기 연예인들이 군대에 갈 즈음이다.
私は自他が公認する壮健な体格と丈夫な体力の持ち主だ.
ただ一つ自信がないことがあったら それは長く立っているとか、長く歩くことや走るなどができないのだ.
まさに そういう私の身体的欠点のため 防衛資格証を得たが.
私の防衛入隊通知に 偏平足持つ人々が少なく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
その消息が伝わった時はチャ・インピョさん、グ・ボンスンさんなど 人気芸能人たちが軍隊に行く頃だった。
객관적으로 볼때 그분들은 나에 비해 특별히 건장한 편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전부터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이 군대를 면제받기 위한 불법행위가 밝혀져 국민들의 시선이 따가울 때였다.
客観的に見ると その方たちは私に比べて特別に壮健な方ではなかった。
その上に その前から 運動選手と芸能人たちが軍隊を免除受けるための 不法行為が明かされて国民の視線が熱い時だった。
그렇기에 나의 방위 입대 소식이 당연히 여러 사람들에게 의문을 주었다고 본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겠지만 난 평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밝힌 운동을 못하는 것이다.
나의 평발은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다른 40대의 아주머니에 비해 날씬한 편인 우리 어머니가 운동의 ,운,자에도 관심이 없는 이유가 펼발에 있었다는 것을 나도 그때서야 알았다.
それで 私の防衛入隊通知が当然多くの人々に疑問を与えたと思う。
もうマスコミを通じて分かっているが私は偏平足だ。
そう だから 上で明らかにした 運動ができないのだ。
私の偏平足はお母さんを似ていたからだ。
他の 40代のおばさんに比べてすらっとしたうちのお母さんが 運動の 「運」にも 関心のない理由が 偏平足にあったということが 私もあの時で分かった。
아무튼 나는 여러가지 면에서 운도 따르고 행복한 놈이다.
그리고 그만큼 나는 외롭다.
역사가 인정하는 똑똑한 성인들의 흉내를 내며 폼잡으려는게 아니라 실제로 인간은 혼자이며 혼자서 느끼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요즘 온몸으로 느낀다.
지독히도 가을을 타는 나는 가끔 불면증에 시달린다.
とにかく私はさまざまな面で運も付いて幸せな奴だった。
そうであれば あるほど 私はさびしかった。
歴史が認める利口な大人たちの真似をして 恰好をつけるのではなく、実際に人間はひとり ひとりで 感じて生き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に 私はこのごろ全身で感じる。
物凄く 秋に反応した私は たまに不眠症に苦しむ。
군인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말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 이다.
처음 방위 입대소식을 들었을때 웃으며 재충전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것으로 내 인기도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시간 고민했었다.
연예인들의 인기란 열심히만 한다고 유지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에 나의 불안함은 더욱 심해졌다.
軍人が不眠症に苦しむという話は 私が思ってもまことに理解しにくい事件である。
初めて防衛入隊通知を聞いた時 笑って「再充電の機会にする」と明らかにしたが 率直に言って これで私の人気も終わりだね と言う考えに多いに悩んだ。
芸能人たちの人気と言うのは、熱心だけで 維持されるのではないというのを 何回も見たから 私の心細さは もっとひどくなった。
고등학교 졸업 이후 3년이 됐고 학적이 없어 입대를 미룰 수도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는 점에 대해 후회가 됐다.
신세대 스타 비운의 보디가드 이 시대 최고의 젊은 남자 등 엄청난 칭찬을 받으며 정신없이 보낸 1년여의 시간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참담했던 삼수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피곤이 겹쳐 옴에도 뜬눈으로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
高等学校卒業以後 3年になったし、学籍がなくて入隊を延ばすこともできなかった.
生まれて初めて大学進学をあきらめたという点に対して後悔をした.
新世代スター、 悲運のボディーガード、この時代最高の若い男など おびただしい褒め言葉を受けて 精神なしに送った 1年余りの時間が 皆 水の泡のように消えて 惨たんだった三手時代(訓練都監のこと)に帰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気がして、疲労が重なって来ても もまんじりともしないで夜を過ごすのが常だった。